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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별기획/HMV Artists 100

[일본아티스트Top100] Blankey Jet City (#73)

출처 : HMV Japan (http://www.hmv.co.jp)
번역 : PJH (파덕) (http://cafe.naver.com/jjpop) 2004/02/12

 Blankey Jet City, 2000년, 해산. 이 뉴스가 미디어에 발표되던 날 좋아헀던 싫어했던 일본에 있는 락 팬들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눈이 작은 점만 해진 사람.. 귀를 의심하게 되는 사람...등등.. 현재 일본에서는 이미 수많은 락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종종 잡다한 락들이 24시간 365일 울려 퍼지는 중에 압도적으로 개성을 발산하게 되는 아티스트는 한정되어있다. "브랑키"라는 소리를 듣게된다면 그 음악이 누구라도 머리 속에 울려 퍼지고 있을것이다. '브랑키'는 확실히 압도적이였다. 이것을 굳이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년 넘게 캐리어를 가지며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해왔지만 "날카롭게 이따금 잔잔히 가슴을 찌리는 말 그리고 음악" 어떤 노래도 예외이지 않은것이 브랑키의 전매특허, 시종일관, 유일무이하였다, 이 위대한 밴드의 역사를 다시 둘러 보려한다.

2000년 지금. 어찌 본다면 몇번씩 있었던 밴드붐의 정점이였다. 약 100년전에도 밴드 붐이라 불리우는 시대가 있었다. 80년대 후반 "오코덴" 밴드가 대두되었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모양으로 89년을 시작으로 "이카스밴도텐코구" 라는 TV프로그램으로 부터 태어난 이른바 "이카텐" 밴드의 대두되었다. "타모" (이쪽도 이미 해산을 선어), "프라잉킷즈", "짓타리시징", "BEGIn"등 많은 아마츄어 밴드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메이저로 뛰어 들게 되었다 그 중에서 "브랑키"도 있었다. 단발로 해산된 밴드도 (감히 이름을 말 할 순없지만) 상당히 많다. 심야에 기분 좋게 버라이어티감각으로 보아오던 시청자에게 있어서도 당연히 "브랑키"의 출현은 다른 밴드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을 가진 밴드로써 강렬히 비추어졌다.

결성은 90년 2월. '나고야' 에서 자라난 3사람 "아사이켄이치", "테루이토시유키", "나카무라타츠야"가 도쿄에서 시작하였다. '벤지' (아사이)가 고등학교 시절에 "로메오즈"라는 벡밴드를 결성하였고 그 후 "테루이"와 알게되어 "역시 사이코비리 벤드를 하고싶어" 라면 "스캬치"라는 사이코비리 밴드로 온겼다. '벤지'와 "테루이"는 이 때부터 밴드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다. 상경하여 이전에 한번 라이브를 같이 한 적이 있는 "나카무라"르 설득하여 "Blankey Jet City"는 활동을 시작하게되었다. 시내 라이브 하우스에서 활동을 하며 앞에서 서수하였던 "이카텐"에도 출연해 6번째로 그랜드 이카텐 킹이 되었다. 이미 "스타린", "스타쿠라브"를 시작으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존재가 된 "자 겐파쿠 오나니즈" (통칭 .겐오나) "마스타베션" (통칭 .마스베) 라는 백벤드에 목숨을 건 드러머 로써 활약을 하고있던 나카무라"가 "이카텐"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격적이였다 (일부 펑크 를 좋아하던 사람들 만 그럤었나??)

91년 기념비적인 1st앨범 "Red Guitar And The Truth"와 싱글 "후료쇼넨노우타"를 토시바EMI로부터 말매하였다. 첫번쨰 작품부터 프로듀서는 "피스톨즈", "크랏슈"등을 다루었던 엔지니어이기도 한 "졔레미 그린"이였다. 물론 레코딩도 런던에서 하였었다. 앨범이 오리콘 첫등장 8위라는 판매량면에서도 센세이션을 불러 모았지만 그 내용도 심오하였었다. "이 아픔은 무엇이지?" 라며 앨범을 듣던 라이브를 보던 가슴이 매이듯 아퍼온다. 청춘의 한 복판에 이 앨범과 만나게된 사람은 분명 마음속이 붙들려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발매후 한 여름에 걸쳐 진행된 전국 투어는 초초에 휩싸인 채 어디에서 공연을 하던 공연장을 가득 채웠었다. 그 후 바로 2nd앨범의 제작을 착수하였고 여기에서 프로듀서 "쯔치야마사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 후 그들이 하였던 말들에 따르면 명곡을 갖췄다는 1st의 성과에는 100%만족을 하지 못했다 한다.그 이유는 '제레미그린' 일본어풍의 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는것과 첫 레코딩이었기에 서툴렀다 생각하기 때문이였다.

2nd앨범 "Bang!"은 전곡 아날로그 녹음이라는 크게 주목을 모아 오리콘 첫등장 7위라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이미 그들에게 "이까텐킹"이라는 이름을 초월 하였었다. 92년 1월에 "Bang!"을 세상해 낸 후 데뷔 뒤 3번째가 되는 전국 투어르 하게되었는데 그 중 시부야 공회당에서 한 라이브가 4월 첫 라이브 비디오 "Dog Food"로써 발매되었다. 계속해 9월에 발매된 앨범  "Live"는 3월 1일 똑같이 시부야 공회당에서 행한 라이브를 수록하였다. 본편의 라이브로써 연주된 "Baby Baby"는 계속해 이야기되었고 해산라이브가 된 2000년 요코하마 아레나 2days에서도 양일동안의 라이브곡으로써 연주되었다. 현재 음원으로는 이 "Live" 혹은 "Last Dance"에서밖에 들을수가 없다.

같은해 92년 의 11월 '브랑키'가 역사속에서 지워질일 없는 일이 싱글 "와루이히토다치"에서 이었다. '브랑키' 팬에게는 지금으로도 손색없는 노래였지만 당시 가사의 한부분이 문제가 제기되어 메이져에 그대로 나오지 못하고 소속사무실에서 인디로 발매되었다. 제작자 로써는 본래 있는 그대로 들려주기를 원하기에 만들어질수있었던 일이였고 인디즈 차트을 당당히 1위로 장식하였음은 말할것도 없겠다.

그 다음해 2월 최고 걸작이라 불리우는 4rd앨범 "C.B.Jim"을 발매하였다. 짜릿하게 긴장감에 둘러싸이며 스피트를 한층 더욱 늘린 뱅퀴쉬 사운드가 이어진다. '브랑키'에게 종이 한장 차이의 위험함을 바란다면 바로 이앨범이라 할 수있겠다. 가사에서도 제3자로써 이야기 하지 않고 '벤지' 그 자신의 내면 깊은곳에서 나오는 것을 작품에 부여하였다. 여기까지가 '브랑키'에게 있어서 중요한 한 시대였을지도 모르곘다. 12월에 발매된 미니앨범 "Metal Moon"에서는 어쿠스틱측면이 강조되어 인상적인 탓인지 찬반이 확연히 나누어지는 문제작이 되었다. 계속하여 5th앨범 "시아와세노카네가나리히비키 보쿠와타다카나시이부리오스루"는 여장을 한 쟈켓으로 사람들을 깜짝놀라게 하였고 사운드 면에서도 '타워오브파워'의 호른 섹션 이나 '리틀피트'의 키보디스트 '비루베인'등을 불러들여 확실히 새로운 장을 열어 팬들을 놀라게하였다. 그리고 이 2작품이 '브랑키'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94년 6월 '클럽 치타 카와자키'에서 조금 희한한 라이브를 하였다. 스테이지가 특별이 원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비디오슈팅을 위해 행해진 라이브로 이 날의 규모는 전국 라이브 하우스 투어의 규모와 귀중한 오프숏등도 참가하여 비디오 "Monkeystrip"으로 9월에 발매되어 오리콘 첫등장 3위로 인기를 보여주었다. 선곡도 뛰어나어 가치도 뛰어났다.
12월에는 첫 무도관 라이브를 감해하여 1만명의 '브랑키' 팬은 넘쳐 들어왔다. 총 21곡 (앵콜은 이례적으로 2번) 이라는 충실한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95년 3월 첫 베스트 앨범 "The Six"를 발매하였다. 베스트라 하지만 단지 대표곡들을 오리지널 디스크에 담은 것과는 다르다. 이 앨범에 수록하기 위하여 94년 가을에 영국으로가 "Rude Boy"를 레코딩하였고 '가도레루니스와리나가라' , '무네가코와레소', '보쿠노코코로오토리모도스타메니'등 총 4곡을 새로운 버젼으로 수록하였다. 게다가 '와루이히토타치'가 완전 버젼으로 수록되기 하였다. 곡수도 14곡으로 역시 '브랑키'답게 팬들에 대한 배려도 만점. 덧붙혀서 영국으로 가있는 동안 레코딩후에 라이브도 하였다 한다. 95년 6월 부터 7th앨범의 제작을 위해 다시 영국으로 가서 또 UK LIVE TOUR로써 런던 근교 6곳을 돌아 평판을 높혀 멋짓 이름을 남겼다. 이 날의 규모는 12월에 2매조 비디오 'Are You Happy?"로써 발매되었다. 거기에 전달 11월 7th앨범 "Skunk"을 발매하였는데 프로듀스로써의 "쯔치야마사미"와는 최후의 앨범이 되었다.

96년 멤버는 각각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벤지-> Sherbet. 테라이-> Joe Brownn, 나카무라-> Love Shop Losalios 로 활동.

97년 레코드사 이적후 첫 발매를 5월 28일 싱글 '가솔린노유라레타'로장식. 오옷! 돌아왔다! 라며 즐거하게한 노래였다. 게다가 6월에는 첫 셀프 프로듀스으로 8번째 앨범 "Love Flash Fever"을 발매하였고 스케일에서도 한층 커져 편안함을 느껴주었다.

98년 1월 10번째 싱글 "아카이탄바린"을 발매하여 오리콘 첫등장 11위라는 대히트를 하였고 그 후 라이브에서도 항상 나오는 노래가 되었다. 같은 날 토시바EMI때의 베스트 "쿄쿠코센우에노아리'도 발매하여는데 미발표곡 2곡을 포함하여 초기에서 중기까지의 '브랑키'를 모아내었다.
6월 10th앨범 '로메오노신소'를 발매. 셀프 프로듀스도 2번째가 되어 그들이 당시 하고 싶었던 것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으로 새로운 시도로써 루프를 집어넣는 한편 가사면에서도 더욱 깊이 하나한 새심히 정비해 독특한 '벤지'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어져있는 노래들의 타이틀을 보는것만으로도 그 분위기가 전해지는것 만으로 뜻 깊은 앨범이였다. 11월에는 첫 클립집이 되는 "Babyface President"가 발표되었고 이것도 오리콘 비디오 차트 1위를 장식하였다.

99년에 들어서자 멤버는 다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벤지'의 Sherbet은 Sherbets으로 약간 개명하여 레코딩하였고 '나카무라'는 '스카파라'의 '아오키'가 급거하였기에 헬퍼로써 '스카파라' 투어를 돌았다. 7월에는 Sherbets'의 앨범 'Siberia'를 발매. 10월에는 '테라이'의 프로젝트 'Jim Spider'의 앨범 'With A Ghost'를 발매 11월에는 나카무라의 프로젝트 'Losalios'의 앨범 '세카이치즈와치노아토'를 발매하여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00년 4월 '브랑키'는 싱글 'Sea Side Jet City'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기다리던 11th앨범 "Harlem Jets'가 5월 10일에 발매되었다 하지만... 이 날 슬픈 광고가 신문에 올라왔다. 글의 서두에서도 적었지만 'BJC해산'이라는 문자였다. 이 최후가 된 정규앨범이 티없이 훌륭한 작품으로 '브랑키.. 처음에는 좋았는데..' 라는 등 말하던 사람에게도 절대만족을 줄수있다 확신할수있는 실례였지만 한순간 시간은 멈추어버렸다. 7월 최후의 요코하마아레나 라이브 2days가 8일 9일에 행해져 청중은 눈물, 또 눈물로 마지막을 보냈다. 그 후 사시상 마지막 액트가 된 '후지락 페스티벌'의 쇼에서 '브랑키' 팬임을 자인하는 사람들 외에도 많은 청중에게 '멋있다!'라 불릴 정도로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생음악을 듣는것이 불가능하게되었다. 9월 마지막이였던 요코하마아레나의 라이브가 "Last Dance"라는 2매조 앨범이 되어 나왔다. 가지 못했던 사람도 가었던 사람에게도 즐거운 선물이였다. 10월 25일에는 '백판흑판'이라 불리우는 베스트앨범이 토시바EMI, 포리도루 에서 각각 발매되었다. 과연 어떤 노래를 베스트로 선정할지 매우 고민하였을 것이다. 'Harlem Jets'의 리뷰에서 적었듯이 '브랑키'는 작금 스포츠화된 락과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다. '들리는'락인 것이다. 바라보면 반드시 무언가 가슴을 찔러 들어온다... 깊게...더 깊게.. 찔러 들어온다.. 이런 살아있는 밴드 별로 없지 않을까?

 ▒ 원문 ▒
ブランキー・ジェット・シティ、2000年、解散。このニュースがメディアで発表された日、好き・嫌いにかかわらず、日本中のロック・ファンは一瞬時が止まってしまったのではないか。目が点になった人、耳を疑った人・・・。今や日本にだって数多くのロック・アーティストが存在する。種種雑多なロックが24時間、365日、鳴り続ける中で、圧倒的に個性を放つアーティストとなると限られる。「ブランキー」と聞けばその音楽が誰でも頭の中で鳴るだろう。ブランキーは確実に圧倒的だった。それを否定する人はいないだろう。10年ものキャリアのうちにはいろいろなサウンド的な試みもあったが、「鋭く、時にやわらかに胸に突き刺さるコトバと音」は、一曲の例外もなくブランキーの寡占状態。終始一貫して、唯一無二だった。この偉大なバンドの歴史を振り返る。

2000年の今、ある意味また何度目かのバンド・ブームの最中である。約10年前にもバンド・ブームと呼ばれる時代があった。80年代後半の「ホコ天」バンドの台頭、そしてそれを受けた形で89年に始まった「いかすバンド天国」というテレビ番組から生まれたいわゆる「イカ天」バンドの台頭。たま(こちらも先日解散を宣言)、フライング・キッズ、ジッタリン・ジン、BEGINなどなど多くのアマチュア・バンドがこの番組をきっかけにメジャーに飛び出していった。 その中にブランキーもいたのである。一発屋として散っていったバンドも(敢えて名前は挙げません)数知れず、深夜にお気楽にバラエティー感覚で眺めていた視聴者にとって、当然、ブランキーの出現は他とは一線を画した緊張感のあるバンドとして強烈に映った。 結成は90年2月。名古屋育ちの3人…浅井健一(Vo.G)、照井利幸(B)、中村達也(Ds)が東京で始めた。ベンジー(浅井)が高校の時ロメオズというパンク・バンドを組み、その後照井と知り合い「やっぱサイコビリーのバンドやりたい!」とスキャッツというサイコビリー・バンドにシフト。ベンジー&照井利幸はここからバンド生活を共にする。上京して、以前一度一緒にライヴをやったこともあった中村達也を口説き?、ブランキー・ジェット・シティーは始動した。都内のライヴハウスで活動しながら、前述の「イカ天」に出場し、第6代目グランドイカ天キングとなる。既にスターリン、スタークラブをはじめとして、知る人ぞ知る的な存在になってしまったかも知れないザ・原爆オナニーズ(通称原オナ)、マスターベーション(通称マスベ)といったパンク・バンドのキレ者ドラマーとして活躍していた中村達也が「イカ天」に出ている!というのはそれだけでもかなりの衝撃! (だったのは一部のパンク好きだけですか??)

91年、記念すべき1stアルバムRed Guitar And The Truthとシングル不良少年のうたを東芝EMIからリリース。一枚目からなんとプロデューサーはジェレミー・グリーン。ピストルズやクラッシュをも 手掛けたエンジニアである。勿論レコーディングもロンドンで。アルバムがオリコン初登場8位、というセールス面でもセンセーショナルだったが、その内容も濃かった。この痛さはなんなんだ!とアルバムを聴いても、ライヴを観ても感じた。胸が締め付けられるようで苦しい。青春真っ只中でこのアルバムに出会ってしまった人は、それはもう心中かっ攫われるに決まっている。リリース後に夏までかけて回った全国ツアーは、焦燥にかられた輩でどこもいっぱいだった。 その後間もなく2ndアルバムの制作に取り掛かる。ここからプロデューサー土屋昌巳との付き合いが始まる。後になってから彼らが語った事によると名曲揃いの1stの出来には100%満足はしていなかったようだ。ジェレミー・グリーンに上手く日本語の機微が伝わらなかった事や、初めてのレコーディングということで不慣れなため思うようには作れなかった事などを理由に。

2ndアルバムBang!は全曲アナログ録音という趣向の面でも大きな注目を集め、やはりオリコン初登場7位という快挙を成し遂げる。もはや彼らに「イカ天キング」の肩書きなど微塵も必要なかった。92年の1月にBang!を世に送り出した後、デビュー後3度目の全国ツアーに出る。その中の渋谷公会堂でのライヴが、 4月、初のライヴ・ビデオDog Foodとして発売された。続いて9月にリリースされた3rdアルバムLiveは、5月1日に同じく渋谷公会堂で行われたライヴを収録したもの。アンコールこそ入っていないものの、ノーカット。本編ラストで演奏されている「Baby Baby」は、ずっと後の話になるが解散ライヴとなった2000年の横浜アリーナ2daysでも、両日アンコールのラストの曲として演奏されている曲である。現在音源としてはこの「Live」もしくはLast Danceでしか聴くことが出来ない。

同じ年、92年の11月、ブランキーの歴史において風化させる事の出来ないひとつの出来事があった。シングル悪いひとたちにまつわる一件である。ブランキー・ファンにとって今や欠くことの出来ないこの曲だが、当時歌詞の一部に問題があるということでメジャーからはそのままで出すことが出来ず、ならばと所属事務所からインディーズという形でリリース。作り手として、もとのままを聴いてもらいたいという強い意志の現れである。インディーズ・チャートを堂々1位で飾った事は言うまでもない。

翌年2月、最高傑作とも言われる3rdアルバムC.B.Jimをリリース。ピリピリと張り詰めた緊張感に包まれ、よりスピードを増したパンキッシュなサウンドが並んでいる。ブランキーに紙一重の危うさを求めるならこのアルバムだろう。詞の面でも第三者としての語り口ではなく、ベンジーの内面を深くえぐったような作品が増えている。ここまでがブランキーの一つの時代だったかも知れない。12月にリリースされたミニ・アルバムMetal Moonではアコースティックな側面が強調された印象のせいか、賛否の分かれる問題作となった。続く5thアルバム幸せの鐘が鳴り響き 僕はただ悲しいふりをするは女装のジャケットにビックリすると同時に、サウンド面でもタワー・オブ・パワーのホーン・セクションやリトル・フィートのキーボーディスト、ビル・ペインらを迎え、それまでとは明らかに異なる幅の広さを見せ、ファンを驚かせた。これら2作がブランキー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となっていることは明らかである。

94年6月、クラブチッタ川崎にてちょっと変わったライヴが行われた。ステージが特別に円形に組まれているのである。これはビデオ・シューティングの為に行われたライヴで、この日の模様は、全国ライヴハウス・ツアーの模様や貴重なオフ・ショットなども加え、ビデオMonkeystripとして9月に発売され、オリコンでも初登場3位と人気を博した。選曲もナイス!なので観る価値あり。
12月には初の武道館ライヴを敢行!1万人のブランキー・ファンは湧きに湧いた。全21曲(アンコールは異例の2回!)という充実したライヴに立ち会った人はラッキー。

95年3月、初のベスト・アルバムThe Sixをリリース。ベストとは言っても、ただ代表曲をオリジナルのテイクのまま集めた類いとは違う。このアルバムに収録すべく、94年の秋に渡英して「Rude Boy」(不良少年のうた)をレコーディング、他にも「ガードレールに座りながら」「胸がこわれそう」「僕の心を取り戻すために」の全4曲が新しいバージョンで収録されているのだ。更に更に、あの「悪いひとたち」が完全バージョンで収録。曲数も14曲と、さすがブランキー、ファンへの配慮は満点。ちなみに渡英の際、レコーディングの後にライヴも行っている。この95年、6月から7thアルバム制作の為に再び渡英。そこでまたUK LIVE TOURとしてロンドンの近郊を6ヶ所回っている。評判は上々だったらしい。8月、日本に戻り、代々木公園野外ステージにてフリー・ライヴを敢行。つまりタダ。「Are You Happy?」と題されたこのライヴは13000人もの動員を記録。日本のロック史上に名を残す素晴らしいライヴとなった。この日の模様は12月に2本組のビデオAre You Happy?としてリリースされた。それに先駆けて11月、7thアルバムSkunkをリリース。 プロデューサー土屋昌巳との最後のアルバムとなった。

96年、メンバーはそれぞれソロ・ワークをスタートさせる。ベンジー=Sherbet、照井=Joe Brownn、中村=Love Shop Losalios での活動。

97年、レコード会社移籍後初のリリースを5月28日マキシガソリンの揺れかたで飾る。おぉっ!帰ってきた!という嬉しいナンバーだった。畳み掛けるように6月、初のセルフ・プロデュース・アルバムとなる8枚目Love Flash Feverをリリース。スケールも大きく、どっしりと腰を落ち着けたような仕上がり。

98年1月、10枚目のシングル赤いタンバリンをリリース。オリコン初登場11位という大ヒット。後のライヴでも定番となる。同日、東芝EMI時代のベスト国境線上の蟻もリリース。未発表曲2曲も含む、初期~中期のブランキーが詰まっている。
6月、10thアルバムロメオの心臓リリース。セルフ・プロデュースも2回目ということで彼らの当時やりたかった事が存分に発揮できた感のある快作。新しい試みとしてループを取り入れたりする一方、歌詞の面ではより深く、ひとつひとつ選び抜かれたコトバで、独特のベンジーワールドが堪能できる。並んだ曲のタイトルを見るだけでもその雰囲気が伝わってくるのでは?奥の深いコクのあるアルバム。11月には初のクリップ集となるBabyface Presidentが発売され、これもオリコンビデオチャート1位を飾る。

99年に入り、メンバーは再びソロ・ワークにシフト。ベンジーのSherbetはSherbetsとビミョーに改名しレコーディング、中村はスカパラの青木氏急逝のため、ヘルパーとしてスカパラのツアーに回る。7月、SherbetsのアルバムSiberiaリリース。10月、照井のプロジェクト、Jim SpiderのアルバムWith A Ghostリリース、11月、中村のプロジェクト、Losaliosのアルバム世界地図は血の跡リリース、どれも高い評価を受ける。

そして2000年、4月、ブランキーはマキシSea Side Jet Cityで再びお目見え。ガツンとヤラれた人は多いはず。そして待ちに待った11thアルバムHarlem Jetsが5月10日にリリースとなった。 なったのだが…。この日、悲しい広告が新聞に、あった。冒頭にも書いた「BJC解散」の文字である。この最後となったオリジナル・アルバムがとてつもなく素晴らしいものであり、「ブランキーは初期は好きだったけど…」とか言っている人にも絶対満足してもらえると確信していた矢先である。一瞬、時が止まった。7月、最後の横浜アリーナ・ライヴ2daysが8日、9日に行われた。オーディエンスは涙・涙のラストだった。その後、事実上のラスト・アクトとなったフジ・ロック・フェスティバルでのショウ。ブランキー・ファンを自認する人以外の多くのオーディエンスにも、「かっこいい!」と言わせてしまう程の気概を見せてくれた。でも、もう彼らのナマの演奏を体験する事は出来なくなった。9月、最後の横浜アリーナでのライヴがLast Danceという2枚組のアルバムになって送り出された。行けなかった人も、行けた人にも、嬉しいプレゼント。 10月25日には白盤黒盤というベストアルバムが東芝EMI、ポリドールからそれぞれリリースされる。どの曲がベストかなんて、選ぶのも大変だろう。「Harlem Jets」のレビューにも書いたが、ブランキーは、昨今のスポーツ化しつつあるロックとは全く異質の存在だ。「聴ける」ロックなのだ。向き合えば必ず何かが胸に突き刺さってくる。深く、深く、突き刺さってくる。こんなイカしたバンド、そうそういないよね?